늦은 봄밤, 마을 가장자리에는 아무도 잘 모르는 작은 정원이 있었다. 낮에는 평범한 풀밭처럼 보였지만, 달이 뜨는 순간 정원은 전혀 다른 세상으로 변했다. 풀잎마다 은빛 물방울이 맺히고, 꽃잎은 미묘한 빛을 내며 살아 움직이는 듯 흔들렸다. 사람들은 그곳을 달빛 정원이라

불렀고, 오랫동안 전설 같은 이야기가 전해졌다. 그곳에서 소원을 빌면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말이었다.
1. 소년의 비밀
주인공 하율은 열일곱 살 소년이었다. 그는 어려서 부모를 잃고 작은 고모와 함께 살았다. 겉으로는 씩씩한 척했지만, 마음속에는 늘 빈자리가 있었다. 어느 날 학교 도서관에서 우연히 낡은 책 한 권을 발견했다. 제목은 『달빛 정원의 약속』. 책장 사이에는 누군가가 쓴 짧은 메모가 끼워져 있었다.
"정원은 마음이 진실한 자에게만 길을 연다."
하율은 호기심에 사로잡혔고, 매일 밤 몰래 숲길을 걸으며 정원을 찾기 시작했다. 하지만 수많은 밤이 지나도 그는 빛나는 정원을 보지 못했다. 오히려 허무하게 돌아오기 일쑤였다. 그러던 어느 날, 달이 가장 크고 밝게 떠오른 밤, 그는 길가에 쓰러져 있는 소녀 하나를 발견했다.
2. 소녀의 등장
소녀의 이름은 세아였다. 그는 몸이 약해 마을에서도 늘 집에만 머물렀다. 하지만 그날 밤은 이상하게도 숲으로 이끌리듯 걸어 나왔다고 했다. 하율은 그녀를 일으켜 세우며 집으로 데려다주려 했지만, 세아는 고개를 저었다.
“혹시… 너도 달빛 정원을 찾고 있어?”
하율은 깜짝 놀랐다. 정원의 존재를 아는 사람은 드물었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서로의 비밀을 털어놓으며 함께 정원을 찾기로 약속했다.
3. 정원으로 가는 길
몇 주가 흐른 뒤, 어느 늦은 밤. 달빛이 숲을 은빛으로 물들이자 길이 열렸다. 숲 한가운데 오래된 돌문이 빛나며 나타났고, 그 안쪽으로 신비로운 향기가 풍겼다. 하율과 세아는 손을 꼭 잡고 문을 통과했다.
그곳은 정말로 믿을 수 없는 광경이었다. 풀잎마다 작은 별이 박혀 있는 듯 반짝였고, 나무들은 바람에 맞춰 노래하듯 흔들렸다. 하늘에서는 별빛과 달빛이 동시에 흘러내려 정원을 감싸고 있었다.
세아는 눈물이 맺힌 채 속삭였다.
“정말… 있었구나.”
4. 이루고 싶은 소원
정원 한가운데에는 맑은 연못이 있었고, 그 위로 달빛이 고요히 비치고 있었다. 전설에 따르면, 연못에 마음을 담아 말하면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했다. 세아는 조용히 연못 위에 손을 얹었다.
“나는… 오래도록 아프지 않고, 이렇게 웃으며 살고 싶어.”
하율은 그녀의 소원을 들으며 마음이 저릿했다. 그는 처음에는 부모님을 되찾고 싶다는 생각을 했지만, 세아의 소원을 듣는 순간 망설임이 사라졌다. 그는 자신이 가장 진심으로 바라는 걸 알았다.
“나는 세아가 오래도록 행복하게 살 수 있기를 원해.”
두 사람의 말이 끝나자 연못은 잠시 푸른빛으로 빛났고, 잔잔한 물결이 일렁였다. 정원은 고요히 대답하듯 바람을 불어왔다.
5. 새로운 시작
다음 날, 세아는 이전보다 훨씬 건강해진 모습을 보였다. 의사도 이유를 알 수 없다고 고개를 저었지만, 하율은 알았다. 달빛 정원이 그들의 약속을 들어준 것이다.
세아는 다시 학교에 다니기 시작했고, 두 사람은 매일같이 웃으며 하루를 보냈다. 하지만 그들은 정원에 대해 다른 사람에게 결코 말하지 않았다. 정원은 진심을 가진 자에게만 길을 열어주고, 그 비밀을 지키는 것이 또 다른 약속이라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6. 마지막 장면
몇 년이 흘러 하율과 세아는 대학에 함께 합격했다. 떠나기 전날 밤, 둘은 다시 숲길을 걸었다. 그러나 이번엔 아무리 기다려도 달빛 정원은 나타나지 않았다. 대신 하늘에서 유난히 큰 달이 두 사람을 비추고 있었다.
하율은 세아의 손을 잡으며 미소 지었다.
“괜찮아. 이제는 굳이 정원을 찾지 않아도 돼. 네가 내 곁에 있으니까.”
세아도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맞아. 달빛 정원은 사실 우리가 서로의 소원이라는 걸 알려준 거였어.”
그 순간, 숲을 가른 바람이 부드럽게 스쳐 갔다. 마치 정원이 마지막 인사를 건네는 듯했다. 그리고 두 사람은 달빛 아래, 새로운 삶을 향해 발걸음을 내디뎠다.